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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30대 무왕, 탄생지는 어디?

기사승인 2007.04.19  03:4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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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자는 지난 10일과 17일에 백제문화를 탐방하기 위해 부여를 다녀왔다.


궁남지 저수지 한 가운데에 있는 정자

서울(위례성-한강 이남지역), 부여, 공주, 익산으로 이어지는 백제의 수도로 이미 알려져 있다.

익산 금마에서 태어난 백제 30대 무왕은  금마 인근에 왕궁을 지어 수도를 옮기는 작업을 진행했고 선화공주를 위해 미륵사지를 지어줬다게 대부분의 주장이다.

또한 현재 왕궁면에 위치한 왕궁터를 복원작업하고 있어 향후 익산의 문화관광 상품으로 개발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익산 금마검문소에서 팔봉동 방향으로 가다보면 '서동생가터'라는 푯말이 있다.

그러나 이 보다 앞서 충남 부여군은 대내적으로 백제의 수도라는 점을 내세워 많은 백제 문화권 개발과 함께 박물관 및 백제역사관을 지어 각 학교 수학여행지 또는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다.

특히 백제역사관에는 백제왕궁 재현셋트장을 짓고 있어 향후 더 많은 관광객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궁남지라는 곳에 가보면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인공저수지라고 하는데 백제 시대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궁남지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

그런데 이곳이 얼핏 보면 무왕의 탄생지인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 내용을 살펴봤다.

여기는 옛 백제서울 사비(부여)의 궁남지이다 삼국유사에 이 남지가에 살던 과부가 못의 용과 사랑하여 낳은 이가 서동(백제 30대 무왕)이며...

즉, 서동(무왕)의 어머니는 이곳 궁남지 근처에서 살았지만 서동이 탄생한 곳을 정확하게 지목하지 않아 마치 이곳에서 태어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익산에 있는 많은 문화적 가치가 소홀하게 다뤄지고 있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묘토성이라는 성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홍보조차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


무왕이 지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토성
 

그리고 미륵사지 복원사업도 지지부진해 언제 완료될지 기약조차 없기도 하지만 왕궁터의 개발은 사실 익산시가 아닌 부여에 있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복원작업하고 있어 향후 이곳 관리마저 부여에서 맡을 것으로 보여 결국 익산시는 입장료 수입조차 얻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일에 다녀갔던 백제역사관에는 경상도 지역 2개 초등학교 수학여행단이 다녀가는 모습을 봤으며 일반인도 찾아오는 모습을 봤다.

또한 17일에는 부여박물관 및 궁남지에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을 뿐만 아니라 궁남지에는 익산에 소재한 한 초등학교에서도 다녀갔다.


왼쪽이 무왕의 묘이고 오른쪽이 선화공주의 묘이다.(2005년 12월 27일 촬영 : 오명관 기자)

현재 궁남지는 지속적으로 손질하고 주변 환경을 조성하는 등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종영된 '서동요'드라마 부여세트장은 지금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는 가운데 일반인 기준으로 2,000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어 수입도 얻고 세트장 관리가 잘되고 있지만 익산에 있는 여산과 신흥동 세트장은 제대로 관리조차 못하고 있어 애물단지로 변하고 있다.

오명관 기자 -

<저작권자 © 익산시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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