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10년 전 기사] 백제 무왕의 발자취를 따라

기사승인 2015.09.01  20:57:20

공유
default_news_ad1

- 본 기자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한 기사

이 기사는 본 기자가 2005년 12월 28일에 취재하고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한 내용입니다. 

   
▲ 서동 생가터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이정표. 그러나 이곳에는 논 밖에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웠다.(사진 = 오명관)
전라북도 익산. 이전에는 그냥 지나치고 무관심했던 곳이 관심을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백제의 30대의 왕인 무왕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SBS 드라마 <서동요>로 인해 새롭게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유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발굴되지 않아 초라하게 보였던 백제문화. 그러나 백제는 그렇게 초라한 역사가 아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 무왕의 묘로 추정. 이곳에서 약 200미터 지점에 선화공주의 묘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사진 = 오명관)
   
▲ 선화공주의 묘로 추정(사진 = 오명관)
처음 백제는 기원전 18년에 제1대 왕인 온조왕이 건국하고 수도를 지금의 한강 하류인 위례성(서울특별시 송파구 추정)으로 정하고 백제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또한 13대 근초고왕 때에는 왕권의 강화와 담로제를 통한 지방 통제력의 강화를 기반으로 정복사업에 나서서 경기·충청·전라 3도의 전부와 낙동강 중류의 일부지역, 강원·황해 양도의 일부 및 중국 요서 지방과 일본열도에 이르는 큰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21대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한 후(서기475년) 웅진(지금의 충남 공주)으로 천도하였으며 26대 성왕은 사비성(지금의 충남 부여)으로 다시 천도(성왕 16년 - 서기 538년)하게 된다.

   
▲ 쌍능을 소개하는 안내문.(사진 = 오명관)
   
▲ 무왕의 묘 앞에 있는 비.(사진 = 오명관)
이후 다시 30대 무왕(600년-641년)은 자신의 고향인 지금의 익산으로 천도하려고 왕궁을 건립하였으나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다시 사비성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서기 660년에 결국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며 678년의 백제왕국은 사라지고 말았다.

지금 부여와 공주는 백제문화권 개발에 힘을 쏟고 있으나 익산은 많은 백제문화를 간직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발굴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한 TV드라마에서 방영하고 있는 백제 30대 무왕 이야기로 주목받고 있어 백제왕국의 새로운 부활을 꿈꿨던 무왕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무왕은 현재의 익산에서 태어나 '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마를 팔며 지낸 아이였다. 천방지축 같은 성격으로 어린 시절을 보낸 '장'이 나중에 백제의 30대 왕으로 옹립되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자신의 고향인 익산으로 수도 천도를 꿈꾸며 강한 백제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현재 전북 익산시 왕궁면에서 발굴하고 있는 왕궁리 유적에 남아 있다.

   
▲ 토성 꼭대기에서 바라 본 익산평야. 평야 가운데 지점에 발굴작업이 한창인 왕궁터가 있다.(사진 = 오명관)
   
▲ 왕궁터에 있는 5층석탑.(사진 = 오명관)
지금 이곳은 약 6만5700평이라는 거대한 왕궁터가 있으며 국보 제289호인 5층석탑이 있다. 앞으로 2-3년 내에 발굴 작업을 완전히 끝내고 일반에 공개한다고 한다. 왕궁성에서 발견된 성벽은 도성 내부의 궁궐을 보호하기 위한 시설로 동벽 492.8m, 서벽 490.30m, 남벽 234.06m, 북벽 241.39m인 직사각형 형태의 거대한 터가 있다.

출토된 유물로는 삼족기편, 뚜껑 등 토기편, 수막새, 각종 인장와 등 다양한 기와류와 꽃모양구슬, 달개, 금막대, 금못, 금사, 근판편 등 다양한 금제품을 포함한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특히 이 왕궁터에는 대형화장실을 비롯해 포석시설 등의 볼 때 이 왕궁터가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외에도 익산에는 미륵사지와 미륵사지석탑과 익산을 둘러싼 큰 토성과 고도리석불입상 등이 있다.

   
▲ 익산토성임을 알려주는 안내문. 그러나 토성을 가는 곳을 알려주는 이정표는 그 어디에도 없어 찾기 힘들었다.(사진 = 오명관)
   
▲ 익산토성(사진 = 오명관)
   
▲ 익산토성(사진 = 오명관)
   
▲ 토성입구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길(사진 = 오명관)
   
▲ 토성에서 바라 본 미륵산. 이곳에는 미륵사지와 석탑이 있다.(사진 = 오명관)
   
▲ 고도리석불입상(사진 = 오명관)
   
▲ 무왕묘와 선화공주묘 사이에 있는 길(사진 = 오명관)

오명관 기자 iscmnews@daum.net

<저작권자 © 익산시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